시간 여행, 경제학의 위대한 스승 Paul A. Samuelson의 Economics로 그를 회상하다


학부시절인 1980년에 'Paul A. Samuelson의 Economics'를 미국 원서로 샀다. 영어사전을 펼쳐가며 공부하던 시절이라 이 책을 읽어야만 경제학이란 학문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때의 시대 상황은 암울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피살 후 계엄 상태로 안개정국이 조성되어 개헌 방향을 놓고 정치권은 혼란에 빠졌고, 민주화 세력들도 갈팡질팡했다.

그런 형국에 대학은 휴교령이 내렸고 정문에는 탱크부대가 진주해 있었다. 서울의 봄과 5.18 민주화운동으로 대표되는 민주화의 좌절, 사회 정화를 앞세운 국보위의 대숙청, 인권유린 수용소 삼청교육대, 언론통폐합 등 암울한 사건만 터져 나왔다.

경제적으로도 1950년 이후 최초의 마이너스 경제성장률과 1인당 국민소득이 감소한 해가 1980년이다. 이러니 데모가 아니면 조요히 숨죽이고 책이나 볼 수밖에 없었다. 이때 읽은 책이 'Paul A. Samuelson의 Economics'이다. 그래서 지금도 나에겐 경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 경제의 원전이란 의미에서 '경전'과 같은 책이다.

CML 경영연구소장으로서 그가 먼저 떠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경제와 경영 분석과 이론에 있어 그는 어쩌면 나에게 있어 최고의 스승이었다. 그저 학교도 못 나가고 리포트를 제출하면 학점을 주던 학부시절이라 책이 전해주는 지식은 최고의 학문이었다.

그렇다면 'Paul A. Samuelson'과 'Economics'는 무슨 책인가? 궁금할 것이다. 그에 대해 먼저 알려야 하는 것이 CML 경영연구소 소장직을 맡은 책무일 듯하다. 1970년 미국인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이론경제학자인 Paul Anthony Samuelson은 1915년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에서 태어났다. 16살의 나이로 시카고대학에 입학했으며, 1935년에 하버드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수학했다. 1940년 MIT,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 강의와 연구를 하며 6년 만에 정교수가 됐고, MIT가 공학뿐만 아니라 경제학에서도 세계적 명문으로 성장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1970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며, 세 명의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로런스 클라인, 조지 애컬로프,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벤 버냉키 FRB 의장 등 세계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들이 그의 제자들이다. 케네디 대통령의 경제고문을 역임한 바 있고, 연방준비은행과 재무성 등 여러 기관의 경제고문으로도 활동했다.

그의 저서 'Economics'는 최초의 경제학 교과서로 인정받아 1948년 초판 이후, 현재 19판까지 발행되었고 4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 400만 권 이상이 판매되었다.

현대 경제학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아온 미국인 최초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Paul Samuelson은 지난 2009년 12월 13일 매사추세츠 주의 벨몬트 자택에서 향년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Paul A. Samuelson이 위대한 것은 역사상 경제학 원론 교과서로는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Economics'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1930년대 말부터 60년대까지 경제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서 케인스 경제학과 신고전파 경제학을 종합한 신고전파 종합 이론을 확립했다.

이 책은 초판이 출간된 1948년부터 지금까지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경제학 교과서 중 하나다. 사무엘슨은 미·적분학을 광범위하게 사용해 동학과 정학의 문제를 다뤘고 이 같은 수학적 방식을 경제분석에 체계적으로 도입했다.

그는 힉스에 이어 신 고전학파의 미시적 시장균형이론과 케인스의 거시경제이론을 접목시켜 신고전파 종합이라는 새로운 학문체계를 완성시켰다.

20세기를 풍미했던 경제이론인 신고전파 종합은 각국 정부의 경제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처방을 요약하면 완전고용을 위해선 적절한 정부 개입이 필요하지만 일단 완전고용을 달성하고 나면 수요, 공급이라는 시장메커니즘에 경제를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 후 197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영국 출신의 존 힉스와 미국 출신의 케네스 애로우는 일반균형이론과 후생경제학에서 개척적인 공헌을 한 석학들이다.

힉스는 이미 20대 약관의 나이에 대체탄력성 개념을 도입해 분배 이론의 토대를 구축하였고, 무차별 곡선을 활용한 새로운 수요 이론을 발전시켰다.

또한 1937년에 발표한 '케인스와 고전학파'라는 논문을 통해 케인스가 '일반이론'에서 제시한 정책적 함의들을 고전경제학의 틀로 흡수하여 재해석하기 위해 도입한 IS-LM 모형은 거시경제학의 기본 모형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와 함께 노벨상을 받은 애로우는 후생경제학에서 개인의 선호 함수로부터 사회후생함수를 도출할 수 없음을 증명한 '불가능성 정리'로 유명하다.

71년 수상자인 사이먼 쿠즈네츠는 국민소득의 규모와 변화를 계산하는 방법을 고안하는 등 경제성장 분야에 업적을 쌓았다.

현대경제학의 아버지로 추앙을 받던 Paul A. Samuelson는 경제학자로서 공직을 고사하고 후학 양성과 경제학 이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여 많은 경제학자와 일반인들에게도 귀감으로 남아있다.

그는 떠났지만 아직도 경제학의 아버지로 우리들의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다른 어떤 경제학자도 새뮤얼슨만큼 후학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Economics'는 경제학 원론 교과서로는 처음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의미 있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의 '중도주의자 선언(A Centrist Proclamation)'은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지향점을 다시 제한적 중도로 되돌려야 한다. 그래야만 세계경제 발전의 결실이 좀 더 골고루 분배되는 완전고용으로 돌아갈 수 있다"라고 밝힌 그를 다시 생각한다.

또한, 경제의 핵심 진리, 경제의 혁신, 오늘날의 정책 현안, 세계화에 관한 논쟁 등을 통해 'Paul A. Samuelson Economics'로 경제학의 지식을 배운 나에게 그는 경제학의 위대한 스승이다. 앞으로 경제와 경영전략에 대한 탐구에 앞서 오늘 그를 다시 회상해 보는 즐거움을 누린다.

엄금희 - 2021.02.25.